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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내용 날짜 2010-12-18 10:32:16 
??eª?/b> 피아니스트 서형민의 미국 찬양 !!! (조회수 1699)
내용 너무나 좋은 기사가 있어서 올립니다.. 여러분 읽어보시고
.....감동 받으세요..!



미국을 찬양한다, 피아니스트 서형민 때문에…
기사등록 일시 [2010-12-18 08:03:00]


서울=뉴시스】신동립의 잡기노트<217>

12년 전 ‘한국의 모차르트’라고 불린 소년이 있다. 신길초등학교 2학년 서형민이다. 1998년 당시 8세 어린이가 스무살 청년으로 성장했다.

네살때 처음 피아노 앞에 앉은 서형민은 다섯살에 작곡을 척척 해내며 주위를 놀라게 했다. ‘평화’, ‘희망’, ‘도둑의 하루’ 등이다. 이 신동은 곧 협주곡, 야상곡, 폴로네이즈, 환상곡, 즉흥곡을 양산해내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런데 피아노는 돈이 많이 들어가는 공부다. 서형민네는 풍족하지 못했다. 아버지 월급의 3분의 2를 교육비로 썼지만, 턱도 없었다. 어머니가 악기공장을 찾아가 한참을 설득한 끝에 180만원에 겨우 피아노를 구해줄 정도였다.

가난 따위는 그러나 천재의 떡잎을 짓밟을 수 없었다. 소문이 퍼졌고, 서형민은 여덟살 때 금호갤러리에서 독주회를 열며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이어 재능을 확신, 지하 셋방을 나와 미국으로 갔다. 박성용 금호 전 회장(1932~2005), MC 주병진씨(51), 피아노학원장들, 어머니 한양순씨(45) 친구들의 도움이 큰 힘이 됐다. 전세비용과 독주회 티켓 판매수익도 보탰다.

그렇게 2001년 매네스음대 예비학교에 들어간 서형민은 바로 그해 뉴욕필하모닉 영아티스 오디션에서 덜컥 우승해버렸다. 큰물에서도 통했다. 이후부터는 탄탄대로 질주다. 이탈리아에서 2차례 독무대를 펼쳤고, 서밋뮤직페스티벌과 제이콥 플라이어 등 각급 피아노 콩쿠르를 휩쓸었다. 중간중간 뉴욕 머킨 홀 연주회, 허드슨밸리 심포니 협연 등으로 외연도 확장했다.

컬럼비아대생인 서형민은 줄리어드음대에서 복수학위를 이수 중이다. 프린스턴대에서도 오라고 했지만,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컬럼비아·줄리어드가 더 좋았다. 서형민은 기계적으로 피아노만 치지는 않았다. 6학년 무렵부터 중학교를 마치기까지 학업성적 1등을 놓친 적이 없다. 덕분에 고등학교를 장학금으로 다녔다. 대학에서도 역시 전액 장학생이다. 줄리어드에서는 우크라이나 출신 피아니스트 에마뉴엘 액스(61) 교수가 자청해서 지도해주는 행운도 잡았다.

거국적인 IMF 쪼들림에서 신음하다 눈길을 미국으로 결연히 돌린 ‘맹모’ 서형민 어머니의 전언을 그대로 옮긴다.

“저는 형민이를 세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미국에서 교육을 시키고 싶었습니다. 굳이 미국행을 택한 이유는 형민이에게 왜 미국이 세계를 이끌어가는 강국인지 직접 접하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음악교육만이 아닌 다른 일반적인 교육도 중시하고 싶었습니다. 미국에서 지내다 보니 제 마인드 또한 나름대로 미국의 교육방식과 미국 사람들의 합리적인 사고방식 등등에 쉽게 동화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희처럼 어려운 형편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도전할 수 있는 생각을 갖기를 바랍니다. 미국은 노력하는 사람에게 더 열려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많은 인재들이 미국에 와서 열심히 공부를 해 미국의 유대인들처럼 미국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키웠으면 하는 제 바람입니다. 머릿수는 많지 않은 유대인들은 처음에는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일을 하면서 자식들에게 최고의 교육을 시켜 각계각층에 인재를 심어 지금은 어느 나라도 무시 못하는 이스라엘이란 국가를 만들었습니다.

미국에 사는 유대인들은 미국에 실로 엄청난 양의 기부와 로비를 해서 미국이 그 금액의 3배를 이스라엘을 위해 쓰게 만든다고 합니다. 저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좁은 나라에서 경쟁할 것이 아니라 넓은 세계에 나가 경쟁하는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미국은 여전히 기회의 땅인가보다. ‘아메리칸 드림’은 살아 숨쉬고 있나보다.

문화부장 reap@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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